한국 토종 브랜드의 맥락과 가능성을 추적하다 👀출장 브리핑
✔️ 신발은 어디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할까 ✔️ 몰딩과 금형은 왜 다른 단계로 존재할까 ✔️ EVA 성형은 어떤 방식으로 형태를 얻을까 ✔️ 미드솔과 아웃솔은 왜 따로 만들어질까 ✔️ 완성된 신발은 왜 다시 테스트를 거칠까 ✔️ 공장을 보고 나면, 신발은 어떻게 달라 보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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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들어보는 지역명, 진장(Jinjiang). 그리고 22년 만에 다시 가본 중국은 기억 속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은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지역 기업가들이 제조업에 뛰어들며 신발 생산을 본격적으로 키워온 도시다. 그렇다고 생산만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다. 반경 50km 이내에 부자재, 금형, 갑피, 아웃솔, 그리고 완제품 제작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 지금 진장은 ‘중국 신발의 수도’라 불리며 전 세계 신발 생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풍경은 어쩌면 한때 대한민국이 가졌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신발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고, 1970년대 부산에서는 나이키 운동화가 실제로 만들어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과 산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신발 생산은 점차 해외로 이동했고, 그 빈자리를 채우듯 진장 같은 도시들이 하나의 생산 중심지로 성장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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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방문한 진장의 여러 공장은 신발을 전혀 다른 물건으로 보게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같은 신발을 다른 기준으로 보게 만들었다. 공장에서 신발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발의 형태를 설계하고, 금형을 깎고, 갑피를 짜고, 자르고, 프린팅한다. 수십 개의 부품이 각자의 역할을 가진 채 하나의 완성품으로 조립되는 방식인 이 과정은 마치 어릴 적 뉴스에서나 보던 자동차 조립 공정을 떠올리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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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종 브랜드의 맥락과 가능성을 추적하는 온큐레이션의 새로운 저널 시리즈 ‘한국제: Focus on Korean Originality’에서 처음 조명하는 브랜드는 바로 프로-스펙스다. 한 세대를 통째로 통과한 이름, 한때 ‘국민 운동화’로 불리며 한국 스포츠 산업의 중심에 서 있었던 브랜드, 프로-스펙스. 그러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시장을 재편한 이후, 이렇다고 할 성과 없이 과거에 머무른 브랜드로 인식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과나 메시지보다 만드는 방식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브랜드를 설명하는 대신, 그 브랜드의 신발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 공장 안에서 마주한 장면들은 과거의 이미지나 익숙한 기억보다 지금, 이 브랜드가 어떤 선택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뉴스레터는 우리가 매일 신고 다니는 신발, 그리고 그 안에 어떤 과정들이 숨어 있는지를 조용히 따라가 본 현장 기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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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신발이 아니었다. 공장 한쪽에서는 신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발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고 있었다. 미드솔과 아웃솔의 형태를 결정하는 몰드, 즉 신발 모양 틀을 제작하는 과정이다. 디자인이 끝난 신발은 곧바로 생산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 형태를 구현할 수 있는 부품이 먼저 필요하다. 몰드는 부품을 만들기 위한 형틀이다.
몰드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목업의 플라스틱은 기계 위에 고정된 채 조금씩 깎여 나간다. 눈으로 보기엔 미세한 차이지만, 이곳에서는 그 1mm가 신발의 착화감을 좌우한다. 한 번 만들어진 몰드는 쉽게 바꿀 수 없다. 수정이 필요하면 다시 가공하거나, 아예 새로 제작해야 한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속도보다 세밀함이 훨씬 중요해 보였다. 신발을 만드는 공정 중에서도, 가장 되돌리기 어려운 과정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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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드가 신발 형태의 기준을 세워주는 단계라면, 그다음에는 그 기준을 실제 생산에 옮길 설비가 필요해진다. 그렇게 시선이 옮겨간 곳에는 바닥에 쌓인 쇳덩어리와 아직 형태도 갖추지 못한 고무 덩어리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신발은 아직 이름조차 붙지 않은 상태다. 디자인은 이미 끝났지만, 공장 안에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도면 위에서 정리된 디자인은 곧바로 생산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 형태를 수천 번 반복해 찍어낼 수 있는 구조가 먼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금형이다. 신발의 밑바닥, 특히 아웃솔과 미드솔의 형태는 이 무거운 쇳덩어리 안에서 결정된다. 한 세트의 금형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꿀 수 없다. 사이즈가 다르면 그에 맞는 금형도 필요하다. 270 사이즈와 275 사이즈는 같은 디자인처럼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설계로 취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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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솔 디자인은 단순히 ‘모양을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반발력, 압축률, 두께, 굴곡. 어느 지점이 눌리고, 어디서 다시 튕겨야 하는지까지 세밀하게 계산된다. 그래서 설계가 끝난 뒤에도 바로 생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금형이 완성되면 샘플을 만들어 보고, 다시 확인하고, 미세한 수정을 거친다. 심지어 고무와 EVA가 어떤 비율로 들어가야 하는지, 열을 얼마나 가해야 하는지, 식히는 시간까지 모두 매뉴얼로 정리돼 있었다. 이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생산 준비가 됐다’라는 말이 나온다. 공장에서 말하는 생산 준비란, 기계를 켜는 일이 아니라 설계가 제품을 구현하고 생산을 반복할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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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솔 금형이 준비되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EVA 알갱이들이다. 나는 이를 좁쌀이라고 불렀다. 처음엔 이 작은 알갱이들이 어떻게 미드솔이 되는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알갱이들은 금형 안으로 들어간 뒤 열을 받는다. 그러자 안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며 금형의 내부를 가득 채운다. 눌러 찍는다는 표현보다는, 튀겨진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현장에서는 이 공정을 ‘성형’이라고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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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건 미드솔이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형태는 만들어지지만, 충분히 식히고 다시 확인한 뒤 필요하면 또 한 번 손을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사실은 미드솔 아래에 있는 아웃솔은 이 단계에서 함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신발의 기획 의도에 따라 미드솔 하나로 완성되기도 하고, 아웃솔이 추가로 접착되기도 한다. 미드솔이 충격을 흡수하고 반발력을 만든다면, 아웃솔은 마모를 견디고 접지력을 책임진다. 역할이 다른 만큼 소재도, 공정도, 만들어지는 방식도 다르다. 아웃솔은 따로 성형된 뒤 마지막 단계에서 미드솔과 다시 만난다. 이후 접착제를 바르고, 열을 가하고, 압력을 가한다. 이때 정렬이 조금만 어긋나도 신발은 불량이 된다. 겉으로는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거쳐온 부품들이 마지막에야 합쳐지는 셈이다. 이 장면을 보고 나니, 신발을 만든다기보다 조립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게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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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솔과 아웃솔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준비되는 동안, 갑피 역시 다른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섬유를 자르고, 겹치고, 꿰매는 과정은 앞선 공정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기계 소리보다 손과 재봉틀의 움직임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 갑피는 신발의 얼굴에 가깝지만, 동시에 발을 감싸는 뼈대이기도 했다. 조금만 어긋나도 착화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속도보다 정확함이 우선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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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로 만들어진 갑피, 미드솔, 아웃솔은 마지막 단계에서야 한자리에 모인다. 공장 안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협업해야 하는 구간이다. 접착제를 도포하고, 말리고, 다시 또 열을 가한다. 이 공정은 마치 몸에 밴 동작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작업자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압력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가만 살펴보니 봉제와 접합 역시 단순히 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재질이 같은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작업에 가까웠다. 갑피가 미드솔 위에 정확히 올라가야 하고, 아웃솔은 그 아래에서 흔들림 없이 받쳐줘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신발은 완성되지 않는다.
앞선 과정을 모두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신발의 형태’가 나타난다. 낱개로 준비됐던 부품들이 이 지점에서 하나의 신발로 조립된다. 공장을 돌며 느낀 건, 신발이 만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전히 조립의 연속이라는 사실이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디자인도, 기술도 아닌, 서로 다른 공정을 정확히 맞물리게 한 손의 감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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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모든 공정이 끝났다. 하지만, 신발은 곧바로 출고되지 않는다. 완성된 신발은 공장을 떠나기 전 연구실로 옮겨진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먼저 신발을 신는다. 기계는 같은 동작을 수천수만 번 반복한다. 바닥에 닿는 충격을 재현하고, 뒤틀림을 만들고, 특정 각도로 신발을 접는다. 신발이 얼마나 버티는지, 어느 지점에서 형태가 무너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신었을 때는 느끼기 어려운 변화들이, 숫자와 그래프로 기록된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신발은 다시 공정으로 돌아간다. 디자인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소재의 선택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완성’의 기준이다. 신발은 만들어졌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이 확인돼야 비로소 완성으로 취급된다. 연구실은 그 마지막 기준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생각보다 다양한 환경을 가정하고 실험을 진행하는 것들을 보며, 신발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절대 녹록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고, 이를 통해 신발을 바라보는 기준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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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을 나와 차 안에서 신었던 신발을 벗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겉모습은 달라진 게 없었지만, 발밑에 닿는 감각은 이전과 조금 달라진 듯했다. 이 안에 들어간 공정과 손, 그리고 선택의 시간을 알고 난 뒤에는 신발을 신는 일이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매일 신고 다니는 물건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선택 위에 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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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Perspective, Different Story
온큐레이션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트렌드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색다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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